올 한 해 내내 제게 작은 기쁨이 있었다면 그건 달력의 그림이었어요. 새로운 달을 맞이하면 방과 작업실에 각각 걸어놓은 달력을 넘기고, 새로운 그림을 바라보는 것이 매우 기뻤어요. 지난해 11월, 광화문 교보문고에 하릴없이 들어갔다가 방에 둘 'Hilma af Klint'의 그림 달력과 작업실에 둘 'Franz Marc'의 그림이 있는 2025년 달력을 안고 나온 것이 이 기쁨의 시작이었죠.
시간이 가는 데에는 관심이 별로 없고, 사실상 매우 오랜 기간 프리랜서로 살아왔기 때문에 날짜 감각이 상실된 채로 살아와 달력의 필요를 못 느꼈는데 말이죠. 익숙한 공간에 다달이 다른 그림을 걸어두는 재미는 꽤 마음을 든든하게 했어요. 닿지 못하는 시간에 화가의 손으로 직접 그린 그림들이 내 방에 와있다는 것 생각해 보면 벅차지 않나요? 눈앞에 있는 화가의 오래된 그림들을 바라보면 시간에 휩쓸리는 듯한 이상한 마음이 들어요. 이렇게 그렸을까요? 저렇게 그렸을까요? 붓은 어떻게 쥐었을까요? 이 화가들은 정말, 정말 존재했을까요?
혹시 저런 재미를, 파워를 나의 그림으로도 전달할 수 있을까요? 이런 생각이 들어, 올 해는 파도의 거품들의 달력을 만들면 어떨까 하면서도 푸지게 게으름을 피우느라 12월 중순이 되어가네요. 2025년 동안의 드로잉들을 모아놓고서 이달엔, 이 계절엔 어떤 에너지가 좋을까 고민하며 매칭했습니다. 아직 저는 저 위대한 화가들처럼 위대한 무언가를 남기고서 사망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여러분의 시간을 휩쓸기보다는 동행하는 듯이라면 더 좋을 것 같네요.
파도의거품들의첫캘린더는 2026년이되었네요. [사전주문 - 후제작] 방식으로 6일간(12/9~12/14)의사전주문주간을오픈합니다. 파도의 거품들의 공식 사이트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아래로상세한정보를남기기로 하고,오늘도 이만 사라지겠습니다! 올연말은어떠신가요? 기쁨이가득하신가요? 역시나 연말은 버거우신가요?이편지를받아보시는파도의거품들의정다운친구들, 건강을염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