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리는 것들은 뭘까? 뭐가 될까? 생각하던 날들이 있어요. 이제 그런 효용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때도,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기분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좀처럼 있을 곳이 없다는, 어떤 구석이나 모서리가 있다면 거기에 서 있는 것 같은, 그런 없는 곳이 있어서 그 없는 곳에서 그리고 있다는 기분.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종이를 펼쳐두고 무릎을 꿇고 웅크리고, 엎드려서 그리기 시작하면 세상에 없는 곳에 혼자 있는 기분이 들어도 괜찮았던(괜찮은) 날들이 이렇게 꽤나 오래 계속되고 있네요. 그렇게 내가 세운 환상의 나라가 '없는 곳의 나라'.
이번 전시를 위해 10년도 더 지난 그림들도 꺼내보았어요. 그림들은 여전히 낯설거나 날 선 눈빛들을 보내옵니다. 뭐가 그리 아팠는지? 뭐가 그리 어려웠는지? 왜 이렇게도 사는 것이 쉽지 않았는지? 지금이라고 뭐, 다르진 않지만 그래도 내 손으로 그린 그림들을 지금의 내 손으로 여러 번 쓰다듬고 각자에게 어울리는 액자를 맞춰주었습니다. 제법 그럴듯한 모습이 되어서 웃겼어요. 잘 좀 지내라 짜식아. 쥐어박고 싶은 모습이었습니다.
이번 전시가 열리는 작은 갤러리 포르테서울은 앞터에 용산구에서 설치해 둔 벤치가 단 한 구가 나무 단 한 그루와 댕그랑 있고, 기찻길 바로 옆이라 종소리가 울리다가 기차가 덜컹덜컹 지나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평화롭고 밝은 나라에 놀러 와 앉아 있는 기분이 들어요. 이런 날들만 계속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여행지에서의 하루같은. 날이 많이 더워 우려되지만 신나는 맘으로 놀러들 오셔서 문을 당차게 열어제껴 주시고, 오래된-여전한 그림들을 재밌게 봐주시면 기쁠 것 같습니다. 이 그림들이 무언지 알게 되신다면 저에게도 알려주세요.
없는 곳의 나라에서, 성혜 드림.